치매 완전 정복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심리학 개론 <33>. 책을 읽으면 치매 예방이 되는 이유

길을 묻다 2021. 4. 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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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여러분이 읽은 글은 ‘메밀 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모습을 상상하셨나요?

33-1. 책 > 라디오 > TV

제가 인용한 ‘메밀 꽃 필 무렵’ 소설의 일부분을 읽고 있으면,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대낮처럼 환하지는 않지만, 산과 개울, 그리고 밭의 형태는 구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환한 밤에 바라보는 메밀 밭은 마치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습니다. 나귀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딸랑거리는 방울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 하고, 꽃 냄새가 나의 코를 후벼 파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묘사한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머릿속에서는 실제 장면은 어떨까? 하고 상상을 통해서 장면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소설에 빠져들다보면 실제 듣지 않아도 들리는 듯 하고, 실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냄새를 맡는 것 같고, 실제 보지 않아도 내 눈앞에 실제 장면이 있는 듯 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 우리 뇌의 다양한 부분들이 활성화됩니다. 글로 묘사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뇌의 각 부분이 ‘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반면 TV를 보면 우리 뇌는 이런 수고스러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화면에 모든 것이 ‘해석’되어 나오기 때문에 우리 뇌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한때 TV는 바보상자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멍’하니 TV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 언어를 담당하는 부위,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 후각을 담당하는 부위, 청각을 담당하는 부위 등 거의 모든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뇌를 많이 사용한다는 뜻이 되고, 뇌를 많이 사용하면 뇌의 퇴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치매를 예방하고, 치매를 치료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치매를 예방하려면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항상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 되어 있어야 가능한데, 한국인들은 책을 읽는 것이 영 편치않고 어색합니다. 
 

이런 이유로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많은 고성이 오갑니다. 보호자는 책을 읽으라고 강요를 하고, 치매 환자는 듣는 둥 마는 둥 합니다. 이럴 땐 책을 읽으라고 강요를 하면 환자와 보호자 둘 다 상처만 입습니다.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지요. 책을 읽기 쉽지 않은 조건이라면, 대안으로 라디오를 듣는 것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책을 읽는 것 만큼 뇌가 활성화되지는 않지만, TV를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뇌가 많이 활성화됩니다. 라디오에는 영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듣고 ‘해석’을 하고 ‘상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오디오북이라는 것도 나왔습니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릴까봐 걱정이 된다면, 지금부터 라디오를 듣고, 오디오북을 듣는 습관을 들여놓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TV가 아닌 라디오를 듣고 책을 듣는 습관이 길러져 있다면, 남들보다는 치매가 덜 빨리 악화될테니까요.
 

또 네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운전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네이게이션은 TV와 마찬가지로 모든 정보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해석해서 제공해줍니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뇌는 적극적으로 주변환경을 탐색하고 해석하게 됩니다.   

33-1. 고스톱을 치면 치매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을까?

많은 분들이 고스톱을 치면 치매가 예방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정말 고스톱을 치면 치매가 예방될까요? 정답은 뭘까요? 
 

정답은 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고스톱의 치매 예방효과에 대한 연구자료를 본적 없거든요. 연구가 있는데 제가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이런 주제로 연구를 한 적이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정답은 이것이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씀드릴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추정’은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뇌의 작동원리, 책을 읽으면 치매가 예방되는 원리, 전두엽의 기능 등을 종합하면 여러분도 정답에 가까운 추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고스톱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 추정하시나요? 아니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뜸 그만 들이고 빨리 이야기하라구요? 네. 알겠습니다 
 

앞서 우리는 뇌가 가장 활성화될때가 대인관계를 할 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전두엽이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죠. 고스톱을 칠 때는 상당한 눈치 게임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당한 추론도 해야 합니다. 또 내가 가진 패가 나와 있는지 살펴야 하니까 상당한 관찰력도 필요합니다. 또 게임을 하는 동안 즐거운 기분이 들면 스트레스 호르몬도 줄어들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고스톱은 상당한 치매 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기능이 고스톱만이 제공해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듯 합니다. 고스톱을 치지 않더라도 대인관계를 활발히 한다면,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테니까 말이죠. 
 

또 고스톱을 하다보면 장시간 몸을 움직이지 않는 점이 치매에 부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할 겁니다. 그럼 결론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TV를 보면 치매가 악화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고스톱을 치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하지만 고스톱이 주는 즐거움이 가족을 만날 때 발생하는 즐거움만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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