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완전 정복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심리학 개론 <6> 브로카, 베르니케, 그리고 언어장애

길을 묻다 2021. 2. 2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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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 뇌가 크게 4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후두엽의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후두엽에 이어서 측두엽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보통은 전두엽의 기능부터 먼저 설명하는데요.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것이 독자들을 위해서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측두엽과 베르니케

 

 

측두엽의 주요한 기능은 청각과 언어입니다. 소리를 듣고 소리가 지닌 정보가 어떤 의미인지 분석하는 기능입니다. 측두엽은 후두엽과 맞닿아 있는 만큼, 후두엽과 굉장히 긴밀한 '협업'을 통해서 정보를 처리합니다. 앞서 후두엽은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측두엽과 후두엽은 상호 협업을 통해서 상대방의 말을 분석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분석할 때 소리를 담당하는 측두엽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두엽도 같이 일을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복화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가'라는 소리를 내면서, 입모양은 '바'를 만들어 낸다고 가정해보죠. 소리만 들으면 사람들은 '가'를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지만, 입모양을 보면서 소리를 들으면 '다'라는 소리로 해석을 합니다. 시각정보와 청각정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측두엽에는 또 베르니케(Wernicke)라는 영역이 있는데요. 치매와 언어장애 등을 이해하는데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베르니케 영역은 소리의 '뜻'을 분석하는 일을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될겁니다. 

 

또 예를 들겠습니다.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된 환자에게 '개구리'라는 말을 들려주고, 따라 말해보라고 하면, 개구리라고 정확히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개구리가 뭐냐? 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합니다. 소리를 듣고 소리를 따라 내는 것 까지는 가능한데, 소리가 지닌 의미를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라는 단어가 무얼 뜻하는지 '분석'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2. 전두엽과 브로카

 

전두엽의 기능을 한 마디로, 그리고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우리의 '영혼'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감이 잘 안잡히죠? 어쩌다 우연히 미국의 메디컬 드라마를 잠깐 본 적이 있는데요. 

 

너무나 다정다감한 아빠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다치면서 성격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아이와 너무나 잘 놀아주던 아빠가 머리를 다친 이후로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며 화를 잘 내는 나쁜 아빠로 변해버렸습니다. 전두엽이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짜증 잘 내는 아빠가 머리를 다친 이후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 말이죠. 이론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실행'에 옮기는 만용은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남편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해 망치로 이마를 때리면, 뇌 출혈로 인해서 사망에 이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여하튼, 치매라는 병이 진전되면, 성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부모님의 성격 변화가 있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치매라는 병이 진행되면 아주 미세하지만, 성격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 그리고 아주 짧게 보면, 이런 미세한 변화를 눈치챌 수 없습니다. 

측두엽에 베르니케 영역이 있다면, 전두엽에는 브로카(Broca) 영역이 있습니다. 브로카 또한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베르니케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라면, 브로카는 말을 하는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된 환자에게 개구리 사진을 보여주고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면 안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이는 물체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합니다. 

 

그래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상대방이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은 힘듭니다. 말을 하는 '기능'이 손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브로카, 베르니케 손상은 평소 부모님과 배우자를 면밀히 관찰하면 충분히 눈치챌 수 있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브로카, 베르니케 손상으로 인한 언어장애를 노화에 의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오해를 하기 때문에, 병을 키우게 됩니다. 

 

또한 브로카, 베르니케 손상 여부는 MRI를 찍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신경심리 검사를 통해서도 브로카, 베르니케 손상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MRI를 통해서는 브로카, 베르니케 손상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MRI 검사가 뇌의 '구조'를 살펴보는 것일 뿐, 우리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심리학적 기초지식을 충분히 쌓은 치매 전문의, 그리고 치매를 검사하는 신경심리전문가는 환자에게서 일어나는 미세한 증상을 관찰하고 발견해서 조기에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치매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치매 진단을 내릴 수 있으며, 우리 뇌 구조와 기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치매 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치매 조기 진단에 실패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제가 치매를 제대로 공부한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심리학적 지식에 대해 별도로 공부하지 않으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것도 모릅니다. 모르기에 제대로 진찰할 수도 없고, 진단을 내릴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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