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완전 정복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심리학 개론 <12> 명상이란 무엇인가?

길을 묻다 2021. 3. 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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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란 단어를 보면 여러분들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기이한 동작의 요가? 아니면 동냥을 다니는 탁발승? 초능력을 부리는 도인? 명상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어떻게 내려져 있을까요? 우선 위키백과를 한번 찾아봤습니다. 

 

명상(瞑想·冥想, 영어: meditation)은 고요히 눈을 감고 차분한 상태로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명상은 종종 마음을 깨끗이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휴식을 촉진시키거나,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사용된다. 앉아 있는 동안, (특정한 주문) 만트라를 반복하는 방법이나, 자신의 호흡을 관조하는 방법 등이 있고, 조용한 환경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 할 수 있다. 

저는 위키백과를 찾아보고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일단 눈을 감는다는 대목부터 어이(?)를 상실하고,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대목에 이르면 거의 실성(?)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유명한 불교 미술 작품을 보면 눈을 감는다는 대목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조각 형태의 불상이던, 그림 형태의 불화이던, 눈을 감고 있는 형태는 없습니다.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코끝을 향하고 있을 뿐이죠. 시선을 코 끝에 고정하는 것은 ‘집중’을 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집중을 하기 위해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걷기도 하고, 소리를 내어 경전을 암송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키백과에서는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군요. 명상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 명상은 무엇일까요? 명상은 한 마디로 말해서 ‘나를 관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연 설명하자면 정신을 집중해서 나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에게? 명상이 고작 그따위라고?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집중해서 나를 관찰하는 것이 과연 쉬울까요? 

북극곰 생각하지 않기,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Ironic process theory) 

심리학에서 자주 거론되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는데요. 바로 북극곰 생각하지 않기라는 실험입니다. 사람들에게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면,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북극곰을 더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반대로 북극곰을 생각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오히려 북극곰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억제에 대한 반동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말이 좀 어렵지요?

물에 떠 있는 스티로폼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스티로폼을 물에 가라 앉히려고 누르면, 다시 위로 솟아오르려는 ‘반동’ 작용이 일어납니다. 우리 인간의 사고에는 이런 반동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박장애도 이런 원리로 설명이 되곤 합니다. 머릿속에서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북극곰이 더 생각나는 겁니다. 

그럼 북극곰과 명상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까요? 명상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은 분들은 대부분 조용한 곳에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잡념을 떨쳐내야지! 그런데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면 북극곰이 생각나는 겁니다. 다시 속으로 생각합니다.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네, 맞습니다. 북극곰 수백, 수천 마리가 우리에서 뛰쳐나와 우리 머릿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북극곰을 다시 우리에 잡아 넣을 수 있을까요? 북극곰을 잡으려 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을 명상으로 만드는 방법

북극곰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좀 추상적인 것 같아서, 다시 다른 방법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데, 온갖 잡념(?)이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잡념이 들면 머리를 흔들어 떨쳐버리려고 하지요. 그러나 명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잡념을 떨쳐버리려 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 잡념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면 북극곰의 역설처럼 잡념이 한순간 머릿속에 들어왔다가도, 다시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이런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고도로 ‘집중’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즉, 명상이란 일종의 ‘집중’을 하는 훈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명상을 정신을 집중한 상태 혹은 집중하려는 과정으로 본다면, 과연 가부좌를 틀고 시선을 코끝에 집중해야지만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지요. 

그림을 그리려면 온 신경을 손끝, 붓끝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엄청나게 힘이 듭니다. 너무나 힘이 들기에 다른 잡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마라톤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마라톤에 ‘몰입’을 하게 되는 겁니다. 불교 사찰에서 3000배를 하도록 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3000배를 한다는 것은 마라톤을 하는 것 만큼이나 힘든 과정입니다. 다른 잡념이 끼어들 빈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3000배는 쉽지 않지만, 명상이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등산을 하면서 이런 몰입의 경지에 빠져듭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며 이런 몰입의 경지에 빠져들기도 하고, 목공예를 하면서 몰입의 경지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화책을 보면서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는 사람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 것, 성경책을 읽는 것 또한 명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기도를 하면서 속으로는 계속 북극곰을 잡으려고 하고, 성경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북극곰을 계속 잡으려 한다면, 몰입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고, 명상이 주는 유익한 효과 또한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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