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완전 정복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심리학 개론 <25> 기억이란 무엇인가?

길을 묻다 2021. 3. 1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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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경우 가장 먼저 드러나는 증상이 ‘기억’장애입니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가장 먼저 손상을 입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서 기억 장애 증상이 있는지 여부를 빨리 알 수 있으면, 치매 진단을 빨리 받을 수 있고, 치료 시기를 앞 당기면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가 ‘고통’을 덜 수 있습니다. 

즉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들인 여러분이 ‘기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면, 부모님의 치매를 조기에 발견함으로써 가정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손실되는 행복의 양이 줄어듭니다. 

그럼 이제 기억이란 무엇인지 좀 딱딱하긴 하지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번호에 숨어 있는 심리학, 단기기억

기억에 대해 공부 할 때 가장 먼저 알아 야 하는 것이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입니다. 단기기억에 대해 설명할 때 컴퓨터에 흔히 비유를 하곤 하는데요. 단기기억은 램으로 장기기억은 하드디스크로 비유를 합니다. 


여기서, 컴퓨터의 램과 하드디스크 용어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스토리 텔링을 하나 해보도록 하지요. 

# 핸드폰을 보다가 옛날 찍은 예쁜 카페사진을 발견했습니다. 문득 그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사진 속에는 카페 간판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을 확대해서 전화번호를 중얼중얼 외웠습니다. 3849-1249, 3849-1249. 그런데 카페 주인이 바쁜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좀 있다 다시 전화를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다른 일을 합니다. 그리고 10분 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단기기억이란 이렇게 우리 머릿속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저장되는 기억을 뜻합니다. 그래서 단기기억입니다. 단기기억은 자꾸만 반복해서 외워주면 오랫동안 저장이 됩니다. 한 시간 뒤에도 혹은 하루 뒤에도 기억할 수 있지요. 이렇게 오랫동안 저장이 되면 ‘장기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단기기억은 저장되는 시간만 짧은 것이 아닙니다. 저장되는 용량도 매우 작습니다. 우리가 숫자를 외울 때 저장할 수 있는 숫자가 대략 7~9개 정도입니다. 그래서 전화번호는 7자리이거나 8자리로 만들어집니다. 그것보다 더 길어지면 사람들이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신통방통한 물건이 나와서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치매의 관점에서 보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를 그만큼 덜 사용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장기기억과 망각

단기기억은 아주 짧은 시간동안 저장되는 기억이고, 장기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저장되는 기억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단기기억을 계속 사용해주면,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변환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분명 장기기억에 저장이 됐는데, 우리는 가끔 기억이 안납니다. 어젯밤에 열심히 공부했는데 다음 날 시험 볼 때 기억이 안납니다. 왜 그런걸까요? 여기에 답을 하려면 ‘망각’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아주 간단히 장기기억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고 망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기기억은 크게 외현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으로 구분됩니다. 

■ 외현적 기억(explicit memory)

외현적 기억이란 다른 말로 서술적 기억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어렵죠? 서술적 기억이란 ‘회상’이 필요한 기억이란 뜻입니다. 즉 어제 저녁에 뭘 먹었지? 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회상’을 해야 합니다. 이런 기억을 서술적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술적 기억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일화적 기억입니다. 조금 전에 말했던, 어제 저녁에 먹은 반찬을 떠올리는 것. 이것이 일화적 기억입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뭘까요? 의미기업입니다. 의미기억은 우리가 책 등을 통해 얻은 지식을 ‘암기’하는 것입니다.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

외현적 기억이 ‘회상’을 필요로 한다고 이야기했으니, 암묵적 기억은 회상을 필요로 하지 않겠지요? 암묵적 기억도 외현적 기억과 마찬가지로 다시 하위 부류가 나위는데요. 암묵적 기억은 크게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과 점화(priming)로 나뉘어집니다. 

절차적 기억은 기술, 테크닉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예가 자전거 타기입니다. 어렸을 적 자전거를 탔지만, 오랫동안 자저거를 타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아마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겁니다. 너무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아서 과연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을 느끼죠. 그런데 막상 자전거를 타보면 쉽게 앞으로 나갑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걸 몸이 기억한다고 표현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절차적 기억이라고 하는 겁니다. 

점화(priming)는 말 그대로 불을 켠다는 뜻인데요. 속담으로 점화에 대해 설명해보면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정도 될 수 있을 겁니다. 아주 오래전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하얀 전쟁’이란 영화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면 이경영(변진수)가 1980년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베트남의 악몽을 떠올리고 절규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시위대와 경찰간 격렬한 싸움이 베트남에서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이걸 바로 점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정적인 기억은 우리 뇌에서 편도체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치매 환자들은 일상적인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군가 내게 잘해줬다는 것 또는 누군가가 내게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 망각

망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요. 망각을 설명하는 이론 몇 가지만 살펴보면 1) 저장에 실패했다 2) 저장된 기억이 삭제됐다 3) 기억을 찾는 ‘단서’를 찾지 못해 꺼내지 못한다 정도 됩니다. 

기억을 찾는데 단서가 필요하다는 말에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한데요. 조금 전 살펴본 점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데 자동차 키를 어디에 뒀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러다 우리집 고양이가 제게 다가왔는데, 그때서야 생각이 납니다. 어제 저녁 급하게 고양이 밥을 사러 갔다가 온 사실을요. 외출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다녀 왔기에, 차 키는 옷 안에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고양이가 자동차 열쇄를 어디다 뒀는지 기억하는 ‘단서’가 되는 것이죠. 

자, 그럼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치매와 건망증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둘을 구분하는 중요한 정보는 모두 제공된 상태입니다. 건망증은 기억이 저장돼 있지만 ‘힌트’가 없어 꺼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힌트만 주어지면 바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죠. 

그럼 치매는 어떨까요? 치매는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증상을 겪습니다. 그러니 힌트 혹은 인출 단서를 제시해도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장기기억은 해마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저장이 되는데,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들은 해마에 손상이 일어나 기억을 저장하지 못합니다. 이제 건망증과 치매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치매와 건망증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여러분의 부모님이 조기에 치매 진단을 받고, 조기에 진단을 받아야 여러분의 삶이 조금이나마 평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잘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작업기억

이제 작업기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업기억은 단기기억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단기기억과 마찬가지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저장되며, 저장 용량도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작업기억과 단기기억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의력입니다. 작업기억은 주의력을 기울여야만 저장되는 기억입니다. 

역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죠? 예를 들어서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하나 사왔다고 가정해보죠. 여러분은 슈퍼에서 사온 물건 값 등은 잘 기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께 슈퍼마켓 점원이 안경을 썼는지 혹은 파마를 했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답을 못합니다. 

슈퍼마켓 직원의 옷차림 등은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간혹 점원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세세한 부분을 잘 기억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기억을 하지 못하지요. 

사실 작업기억은 단기기억과 매우 유사한 개념이라 생략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루이소체 치매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작업기억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더군요. 루이소체 치매 환자도 기억력 장애를 보이는데,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우리 뇌의 해마라는 부위가 손상을 입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지 못하는 겁니다. 반면 루이소체 치매 환자는 주의력 결핍으로 인한 기억장애에 가깝습니다. 일상에 집중을 하지 못하니 너무나 당연하지만 기억을 못하는 것이지요. 

특히 루이소체 치매는 알츠하이머 치매와 구분하기가 어려워 진단에 애를 먹습니다. 결국 주변에 있는 가족들이 환자를 평소에 잘 관찰해서 이야기를 해줘야 정확한 진단이 이뤄집니다. 어렵지만 ‘기억’과 관련한 이론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어야 치매 진단과 치료가 정확히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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