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완전 정복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심리학 <27>. 환자가 아닌 보호자를 위한 심리학 이론– Mood와 Emoton 행복과 불행, 그리고 자존심과 자존감

길을 묻다 2021. 3. 2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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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치매 환자보다는 보호자를 위한 몇 가지 심리학적 상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Mood와 Emotion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Emotion은 우리 말로 감정 또는 정서라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Mood는 직역하면 분위기라는 뜻이 되는데, 우리 말에서 적절한 단어가 아닌 듯 해서 Mood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굉장히 큰 이벤트였습니다. 온 국민들이 지켜봤고, 미스코리아 진이 되면 스타가 됐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미스코리아 진이 수상 소감을 말할 때 ‘행복해 죽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틀린 말이 됩니다. 행복은 감정, 정서(Emotion)가 아닌 Mood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표현이 되려면 ‘기뻐 죽겠어요.’라는 문장이 돼야 합니다. 기쁘다는 것, 슬프다는 것은 감정,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기쁘다는 감정과 행복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정서, 감정이란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입니다. 예를 들어 산 속에서 늑대를 만나서 두려움을 느꼈다면 이건 ‘정서’입니다. 늑대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죠. 부모님이 치매에 걸려 슬프다고 느낀다면, 이것 또한 감정, 정서입니다. 아내가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아서 화가 났다면 이것도 감정과 정서에 해당합니다. 버스가 늦게 와서 짜증이 난다면 이것도 기분에 해당하는 것이구요. 

그런데 행복이란 것은 좀 다릅니다. 내 삶에 대한 만족도와 같은 것인데,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남편이 내게 키스를 해줘서 행복했는데, 오후에 버스가 연착해서 불행해진다면, 내 삶은 행복한 것일까요? 불행한 것일까요? 행복은 죽끓듯이 변하는게 아니기에 아침에 불행했다가 저녁에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나는 행복을 느낀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럼 물음표 한가지를 던져보죠. 치매를 앓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나는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부모님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행복해지는 게 가능하다구요? 네, 가능합니다. 

앞서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살펴볼 때 최고의 스트레스를 100으로 놓았을 때 결혼의 스트레스 지수는 50이라고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결혼보다 큰 스트레스는 많지도 않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결혼은 담보 대출 압류, 해고보다 큰 스트레스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시죠. 여러분의 집에 압류 딱지가 붙으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그런데 결혼이 압류딱지가 붙는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입니다. 

결혼이 이처럼 큰 스트레스지만 여러분은 결혼을 통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죠. 결혼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확장되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즉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면 행복해지는 것이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존감과 자존심

가끔 유튜브 등을 보면 자존심과 자존감에 대해 잘못 설명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자존심, 자존감이 비슷한 느낌을 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내용입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라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명이 길어지면 오히려 더 헷갈릴 수 있으니까요.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한다는 뜻인데요.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험성적이 꼴찌라고 할지라도 ‘나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자존감이 높은 아이이고, 이런 관념을 갖고 있는 아이는 불행해질 가능성이 적습니다. 

반면 전교에서 일등을 해도 서울대에 진학 못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이 쎈 아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 ‘외부=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기준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유독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사람들은 더 많은 걸 누리고 살아도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타인과 비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행복해 질수 없는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자기만족만 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비정상적이겠죠. 

그러나 어떤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울대 학생들의 자존감이 가장 낮다고 합니다. 항상 옆에 있는 누군가와 비교를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더군요. 

치매를 앓는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많은 희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해지라는 법은 없습니다. 계속 강조해왔지만 행복이라는 것의 기준은 나의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힘겹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부모님을 모시는 삶을 통해서 보람을 느낀다면,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이야기를 듣고도 뭔가 이해가 안된다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저자는 빅터프랭클이라는 정신과 의사인데요. 2차 대전 당시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의사가 유대인 수용소에서 깨달은 사실을 바탕으로 쓴 책인데요.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육체가 건강하고 건장한 사람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얼핏 생각해보면 복싱선수나 기타 깡패같은 육체가 건장한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을 것 같은데, 오히려 연약한 바이올리니스트나 시인 같은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겪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행복해질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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