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완전 정복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심리학 개론 <28>. 알파고는 왜 치매 검사를 할 수 없을까?

길을 묻다 2021. 3. 2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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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장기, 체스 등의 게임은 일종의 워게임입니다. 상대방의 영토를 점령하고, 적군을 궤멸시키는 전쟁을 조그만 틀 안에 구현한 것이죠. 알파고가 바둑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심까지 생겼났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착각과 함께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은 상황이 도래하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의 발로인 것이죠. 

그러면 알파고가 바둑에서 승승장구한 것처럼 전쟁을 지휘하면 백전백승을 거둘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게임규칙’이 명확한 동시에 게임의 룰이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죠? 전쟁에서의 승패에는 많은 변수가 개입됩니다. 때로는 날씨에 의해서, 때로는 아군의 심리적 공포심에 의해서 운명이 바뀌기도 합니다. 지휘관은 아군 병사들의 숙련도와 적 병사들의 숙련도 등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날씨는 기본이구요.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전투에서는 승승장구했지만, 결국 러시아의 날씨와 러시아 지도부의 전쟁 수행 의지 등을 파악하지 못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즉, 전쟁을 할 때는 적의 심리상태까지 꿰뚫어 봐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손자는 자신의 병법서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고 했던 겁니다. 알파고가 과연 전쟁을 지휘한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감이 무엇인지, 결사항전 하려는 전투 의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어떤 작전을 구사해야 적의 공포감이 극대화될지 알파고는 알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에게 도덕성이 있을까? 책임감이란 것이 있을까?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하고, 인공지능이 사람 대신 운전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인공지능이 각종 검사를 할 수는 없을까요? 그 중에서도 특히 치매 검사를 인공지능이 할 수는 없을까요?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이 바둑과 관련한 각종 데이터를 모두 공부한 뒤 인간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처럼, 치매와 관련한 각종 검사 기록 그리고 진료 기록 등을 모두 공부하도록 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서 치매 검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바둑은 정형화된 규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큰 틀에서 비슷하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각각의 삶은 모두 다릅니다. 

각각의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바둑판의 기보처럼 수치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먼 훗날 이런 일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지금의 기술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 공포, 결전의지 등을 알지 못하는 알파고가 전투 또는 전쟁 지휘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감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알파고가 인간의 질병에 대해 검사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한 인간에 대해 평가하고 재단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며 상당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에게 책임감이란 것과 도덕성이란 것이 있을까요?

치매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공부한 전문가가 검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이런 원칙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럼, 치매 검사는 왜 10년 이상 공부한 전문가가 실시해야 하는 것일까요? 

치매 검사의 키 포인트는 해석 능력

아래의 사진은 대한신경과학회에서 발간한 논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치매 검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 의사들이 공부를 하는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것인데요. 

치매 진단을 위해서 실시하는 신경심리검사는 “수행과 해석에서 환자의 신체 상태 및 정서적 상태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치매와 관련해서 오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이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인데 치매로 오진을 하거나, 치매인데 우울증으로 진단해서 병이 악화 되는 것이죠. 치매인데 우울증으로 오진을 하면 굉장히 치명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치매환자의 병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환자와 보호자 모두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죠. 

이런 일을 예방하려면 치매 검사 단계에서 우울증과 치매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검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증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치매’라는 소견을 밝혀 오진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논문 일부를 살펴볼까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하에 이뤄진 ‘치매검사’와 관련한 논문에서는 치매 검사에 대해 이렇게 규정짓고 있습니다. 


치매 검사를 할 때 흔히 ‘기억력 검사’라는 것을 하는데요. 기억력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이론’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논문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억이론의 발달과 기억에 관한 새로운 지식의 축적은 다시 기억검사나 기억평가절찿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억력 검사들은 이 같은 기억에 관한 이론적 연구와 임상적 연구의 상호작용의 결과에 의해서 개발된 것이므로 기억이론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기억력 검사의 결과를 올바르게 해석 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수학을 암기과목 공부하듯이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죽어라 암기를 하면 일정부분 수학 점수는 오릅니다. 하지만 어느 선에서 한계에 부닥칩니다.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치매 검사를 하는 사람이 심리학 이론을 모르면 검사 결과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설명해 온 심리학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어온 분이라면, 단기기억이 무엇인지 장기기억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압니다. 그 외에도 치매검사를 실시하는 전문가라면 서술기억 절차기억 의미기억 일화기억이 무엇이고 어떻게 우리 뇌에서 작동하는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치매 검사가 단기기억이 무엇인지, 장기기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비전문가에 의해서 실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치매 환자 보호자들은 힘겹습니다. 치매 간병하기도 벅찬데, 우리 부모님이 받는 치매 검사가 제대로 된 검사인지 아닌지 여부까지 ‘감별’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많은 치매환자 보호자들이 직접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병원에서 오진을 해도 오진인지 아닌지 분간도 못하니까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치매 오진으로 인한 피해사례를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가 검사를 해도 치매 진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말 이틀 동안 공부한 사람들이 치매 검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비전문가에 의한 치매 검사가 이뤄지면, 피해는 환자와 보호자가 입게 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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